나의 이야기

한강_조정래_문장

금평리 2024. 6. 13. 10:55

1권

11 새벽 어스름이 스러져 가고 있는 한겨울 들판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27 "너 피곤한데 그만 자라"

유일민은 동생을 꼬나보았다.

27 그런데 이제 형의 친구까지 한통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는 건 다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이미 어른이었다. 작 년 가을부터 수음을 시작했고, 거기에도 거뭇거뭇하게 털이 솟기고 있 었다. 그걸 모르는 것이 어른들이었다. 국어선생 말마따나 춘향이가 그 멋진 연애를 한 것이 이팔청춘 열여섯이었듯이 자신은 그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열일곱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춘향이보다 1년 먼저 연애편지를 썼고, 연애소설이야 열 권도 더 읽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무작정 어린 애 취급을 하려 들었다.

69 「이 사람, 복어알 묵고 죽는 사람 첨 보등마 걱정도 팔자시, 복어알 묵 고 죽고, 연탄까스 마시고 죽는 사람은 요 서울 하늘 아래 천지백가링께 자네나 그 꼴 안 당허게 허고 딴 걱정은 말어. 주소 읊는 시체야 대학병 원으로 실고 가서 갈갈이 찢어본 담에 화장터에서 꼬실려불면 깨끔허제 어째.」

83 그런데 어느날 주인여자가 고 향이 어디냐고 불쑥 물었다. 자신의 말투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라는 눈치를 챈 유일표는 그냥 광주가 아니라 '전라도 광주'라고 대답했다.

「어머, 학생이 하와이야?」

여자는 콩나물을 팔기 싫다는 듯 콩나물 담던 손을 멈추고 유일표를 뻔히 쳐다 보았다.

다음날부터 유일표는 그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

119「서울애들하고 공부는 할 만하냐?」

유일민은 슬쩍 에둘러 물었다.

「서울놈들이라고 별건가? 다 시시해.」

유일표가 식욕 좋게 밥을 먹어대며 대꾸했다.

「그래도 중학교 때하고 똑같진 않을 텐데. 공부 잘하는 애들이 훨씬 많잖아?」

「형은 그런가 보지? 내 공부는 걱정 마. 엄니 실망 안 시키게 하고 있 으니까.」

동생의 그 눈치 빠르고 시건방진 대응에 유일민은 그만 픽 웃고 말았다.

153 아니 꼬질대 소지 한 분 하는게 3천환씩?

154 천두만이 혼자소리를 하며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가 못내 그리웠다. 아내의 솜씨가 담긴 밥상도 받아보고 싶었고, 아내와 함께하는 그 아늑하고 푼더분한 잠자리도 하고 싶었다. 밥상보다도 더 간절한 것이 잠자리였다. 밥이야 붙여먹고 있으니 그런대로 넘길 수 있었지만 잠자리의굶주림은 아내가 없고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허덕거리고 살면 그 생각이 나지 말아야 할 텐데, 어떻게 된 것이 그 생각은 밥 안 먹으면 배고파지는 것처럼 어김없이 마음을 설렁거리게 하고는 했다. 어찌할 수 없이 혼자 해결을 하며 사창가를 떠올리지 않은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돈이 아까워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웠다. 그런데, 오늘 알고 보니 그 돈이 3천환이라...

162 천두만은, 자기도 어서 그리 되고 싶었다. 자신도 분명 옷이 탐이 났 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다리가 딱 굳어지며 꼼짝을 못하게 겁이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전에 남의 물건에 전혀 손을 댄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리서리, 밀서리는 주인에게 쫓겨다니 면서 해먹었고, 다 커서는 닭서리도 예사로 해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 그런 짓을 할 때는 히히덕거리며 했는데, 아까는 왜 그리도 가슴 이 벌떡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69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왜놈들 편에서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은 대략 160만 명쯤 되었다. 그놈들은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했어야 하는데 미군정에서 과거를 불문한다면서 그놈들을 다시 써먹었지. 독립투사들을 고문했던 고등계 형사 출신 놈들이 다시 경찰 노릇을 하고, 총독부 관리질을 해먹었던 놈들이 다시 공무원 노릇을 해먹는 꼴이 된거야

170 그러나 그런 부당한 처사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과 반발이 격렬해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수립하자마 자 9월 7일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키게 되었지. 그리고 49년 2월부터 반민특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문필가 이광수, 최남선, 고등계 형사 노덕술 같은 자들이 속속 체포되기 시작했지. 그러나, 위기를 느낀 왜경 출신 경찰 간부들이 주동해서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이 벌어졌어. 이승 만정권은 그 엄청난 폭거를 묵인했고, 결국 반민특위는 49년 8월 말로 해산되고 말았지. 그 뒤로 친일파들은 모든 분야에서 멋대로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이 나라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거야

175 커피 줘. 너도 한잔하고.」

한인곤은 전화 쓰는 눈치를 받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 정말요?」 아가씨가 활짝 반색을 하고는, 「모닝 둘이요.」 주방 독으로 가며 신바람나게 소리쳤다.

214 그럼 네 말은 주한미군들의 소 비량보다 더 많은 물건들이 들어와 우리 시장으로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뜻이지?

333 「아이고, 장가도 못 가고 내 불알 터지네.」

「그거 안 돼지. 차장 아가씨들 앞뒤에 하나씩 있으니 빨리 골라 결혼 식올려

「거. 누구냐. 그런 과한 농담하는 게.」

어디선가 울려오는 선생의 목소리였다.

「아이고, 저승사자가 여기까지 따라오셨다.」

「괜찮아. 아무리 지독한 저승사자라도 이 수십 겹의 인의 장막을 뚫고 을 재주는 없으니까.」

「옳소.」

학생들은 와아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즐거운 소풍날이었다.

335 최주한이 술기운 돋는 얼굴로 우는 소리를 했다.

「그 옆집 여고생 땜에?」

술안주로 김밥을 우물거리며 장경식이 말을 받았다.

「그 기집애도 기집애지만, 딴 여학생들의 장딴지만 봐도 그게 하고 싶 어 미치겠다니까. 내가 짐승이 아닌가 싶은 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336 「야, 내 얼굴 어떠냐?」

「걱정 마, 아주 말끔해.」

「내 얼굴은?」

「넌 첨부터 표가 안 나잖아.」

그들은 뛰면서 서로서로의 얼굴색을 보아주기 바빴다.

 

 

2권

23 「야 깡다구, 너 무슨 말을 그리 잘하니? 하여튼 난 그 깡다구에 질렸다.」

유일표를 툭 친 이상재가 머리를 내둘렀다.

「얌마, 잘하긴, 그것 때문에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유일표의 눈길은 돈을 걷어가고 있는 반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왜, 연습하느라고?」

「그렇지 그럼. 글을 몇 번씩 고쳐 쓰고, 틀리지 않게 외우고, 듣는 사 람들의 마음이 동하도록 하려고 감정 잡고 하다 보니 새벽이야. 나라고 뭐 별수 있는 줄 아냐?」

52 유일민의 팔을 잡지 않은 형사가 임채옥을 가볍게 밀쳐내 버렸다.

「오빠, 안 돼요. 오빠, 오빠.......」

뒤에서 들려오는 임채옥의 애타는 목소리는 벌써 울음이었다. 유일민 은 불현듯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71 그때 어떤 남자가 불쑥 다가서며 적삼 아래로 드러난 젖을 움켜잡았다.

「워메, 엄니!」

「사람 미치게 허지 말고 나랑 도망갑시다.」

지게를 진 송촌댁네 머슴의 입김이 뜨겁게 끼쳐왔다.

74 「워메, 요것이 뭐시다냐!」

막내 옆으로 다가서던 월하댁은 질겁을 하며 물러섰다.

큰 감만한 것, 그것은 회충의 덩어리였다. 희읍스름한 회충들은 서로 뒤엉켜 느리게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98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유일민은 임채옥이가 하나의 여자로 불쑥 다가드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 겹치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었다. 자신이 형사들에게 잡혀갈 때 대담하게 앞을 가로막고 나섰던 모습이었다.

104 「아유, 저 추워요.」

유일민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주머니 속의 왼손을 잡은 것은 임해 의 손이었다. 유일민은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114 이규백은 해 저문 추위 속을 걸으며 자신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 어긋날 바에 전라도라고 당당하게 말했어야 했다. "호남'이라고 말을 바꾸면서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 결코 그렇 지는 않았다. '전라도 하와이'라고 호칭으로 쓰이는 그 '전라도'라는 말 을 스스로 하기가 싫었다. 그 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 무조건적인 비칭 에 대한 저항감이었을까, 아니면 전라도사람이라는 숙명을 피하고 싶어 한 순간적 자기부정이었을까.......

139 "정부가 반년 동안에 한 것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바꾼 것 뿐이다."

시중에 새로 퍼지기 시작한 말이었다.

144 「응, 만나보자는군.」

「허! 역시 대학 차이나네.」

「알게 뭐야. 이 선배 꼴 날지 모를 일인데.」

155 병신, 그 정도야 다 방어를 하시는 거고, 하여튼 그 기집애하고 빨리 빠 구리를 더야 되겠는데, 그게 줄 듯 줄 듯하면서 사람 애를 태운단 말야.」

「이새끼야, 정신차려. 빠구리를 텄다가 덜컥 임신을 시키면 어쩔 거 야. 그땐 너 생일날이잖아.」

「이새끼, 넌 왜 그렇게 유치하게 순진하니? 그 많은 산부인과는 어디 다 써먹을래? 맘놓고 빠구리 트고 임신하면 찾아오시오 하는 데가 산부 인과들 아니냔 말야.」

「이새끼 이거 겉으로는 모범생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아주 형편없는 불량학생이라니까. 이거 아주 위험 인물이야.」

162 벽에 붙은 에디슨의 말 아래 새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극복되지 않는 역경은 없다

169 사람을 치는 서동철의 그 솜씨에 놀라고 있었다. 국민학교 때 싸우던 것말고는 처음 보는 서동철의 그 기민하고 정확한 동작은 무 슨무술 시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저게 진짜 깡패는 깡패로구나. 저것도 예사 능력은 아니지. 자식, 제 길 제대로 찾아간 셈이네.

185 말씀 낮추시게라. 선배님은 지 겉은 것 몰르시지만 지넌 선배님얼 잘 알고 있구만요. 중학교 3년 내내 1등만 헌 선배님얼 몰르면 고것이야 간 들어져 이. 하먼이라, 간첩이고말고라.」

192 「와다메, 순 책벌거지로 골샌님인지 알았등마 요것이 똥구녕으로 호 박씨 갔네 그려. 야, 생김도 쌈빡헌 것이 쌕 잘 쓰게 생겼고, 쇠푼 냄새 도 풀풀 나는 것이 깔치 한나 삼삼허게 골랐다야.」

저쪽에 서 있는 임채옥을 힐끔거리며 유일민에게 속삭이고 있는 서동철의 목소리는 달떠 있었다.

「야, 듣겠다.」

「그나저나 니 빠구리 탔냐?」

「미친놈, 별소리 다 하네.」

유일민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끼며 팔굽으로 서동철의 옆구리를 쳤다.

193 "어머, 어머, 제 맘을 어찌 그리 잘 아세요, 꼭 함께 보고 싶었거든요.

어두운 영화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임채옥은 유일민의 손을 덥석 잡으 며 속삭였다.

유일민은 멈칫하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짜릿한 감각이 그 생각보다 먼저 가슴을 찔렀고, 임채옥의 손은 뿌리쳐야 소용없을 정도 로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스키파카 주머니에 갇혀 어찌할 수가 없었던 첫 번째 일 이후 임채옥은 두어 번 만날 때마다 손 잡을 기회를 귀신같이 포착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손을 뿌리치려는 의도는 실행되지 않았다.

어쩌자고 영화까지 이런 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유일민은 단호하지 못한 스스로를 책하고 있었다.

194「선물을 하나 더 받고 싶어요.」 임채옥이 멈춰서며 말했다.

「선물………………?」

「네, 어른으로 인정하는 선물.」

「안 돼. 채옥아, 우린…………………」

임채옥은 유일민을 와락 끌어안았다. 임채옥의 입술이 자신의 입을 막는 것을 느끼며 유일민은 임채옥을 힘껏 떠밀었다. 그러나 목을 끌어 안은 임채옥은 더 바짝 다가들었다. 유일민은 임채옥의 뜨거운 입술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남성이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219 더군다나 한 나라 권력인데………………. 예로부터 부자지간에도 살육을 일삼아 온 게 권력 아닌가.」

265 그 인기 척에 주변의 게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제각기 집으로 숨어버 린 그 재빠름이 게눈 감추듯 한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다.

267「다 알면서. 오늘은 실수 안혀.」

남자는 힘찬 말에 맞추어 억센 기운으로 잡아끌었다.

「나 소리 질를라요.」

「질러, 맘대로 질러. 하늘이나 들을 것잉께 어서 질러.」

포구고 들녘이고 인적은 까마득했고, 해남댁의 한 발은 벌써 갈대밭 으로 끌려 들어 있었다.

「대낮에, 뻘건 대낮에 어쩔라고 이러요.」

「보리밭에서도 허고 밀밭에서도 허는디. 거그다 대면 이 갈대밭은 안방이여

268 해남댁은 황춘길의 달콤한 말에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그것이 자꾸 밑을 받쳐대자 거기가 스멀스멀해지고 간질간질해지면서 몸을 가눌 수 없이 맥이 풀어지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마음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269 특히 남자의 그것은 온몸의 힘이 그곳에 집중되어 뻗치고 있는 것처 럼 빳빳하게 곤두서 무엇이든 뚫을 것 같은 기세였다. 남자는 뜨거운 숨 을 내뿜으며 여자 위에 몸을 실었다. 여자의 팔이 남자의 등을 감으면서 두 다리가 벌어졌다. 두 몸이 한 덩어리가 되면서 꿈틀거리고, 비릿한 소리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짙은 갈대숲의 초록 그늘 아래 두 알몸은 싱 싱하게 요동 치고, 무수한 갈잎들이 사운거리는 소리가 그들이 흘리는 진득진득한 소리를 감추어주고 있었다.

308 서로 호감을 가진 남녀가 만나다가 손을 잡게 되면 사랑한다는 표시고, 입맞춤을 하게 되면 결혼을 약속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어 있었다.

312 「히야, 오늘은 이거 선녀 하강이시네. 가만있거라, 어떤 놈씨를 만나 고 오시는 길인가, 아니면 죄수 아닌 죄수로 갇혀 있는 이 외로운 사나 이 원병균을 위로하려고 저리도 화사하게 차려입은 것인가. 답을 하라. 나의 아씨 박자영이여!」

321 제복이 사람을 만든다. 나폴레옹

 

 

3권

29 편지 봉투에 쓰인 유일민의 글씨를 보며 임채옥의 눈에는 눈물이 핑 그르 돌았다. 나한테 안 알리고 간다고 무슨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아니, 날 고생시킨 효과는 봤군요.

임채옥은 눈물을 삼키며 유일민에게 공박하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제가 적어드릴게요.」

78「원 형 이거 상습범인 모양이네. 혹시 누구처럼 너무 몸달아 매달리다 가벽 떠다넘긴 일은 없나 몰라?」

「왜, 여러 번 있지. 한번은 벽이 벌렁 넘어갔는데 여자가 하는 말이, 이 남자 시원찮던 참인데 마침 잘됐어요, 하잖아. 그래서 15센티미터의 거포 맛을 화끈하게 보여줬지.」

「또 나온다 또.」

79「미칠 듯 불붙는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는 말하지 말라. 그게 때와 장 소를 가리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니라.」

원병균의 가성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85 달러를 사고 파는 그 여자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달러를 사라고는 하지 않고 팔라고만 했다. 그러다가 손님을 잡게 되면 그 여자들은 뻘밭의 게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듯 시장 골목 어딘가로 날쌔게 사라졌다. 눈감고 아웅이긴 하지만 단속의 눈길을 피 하려는 거였다.

105 「이규백이와 결투하고 싶어요.」

강숙자의 그런 가엾은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져 유일표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어머머머, 어쩜 좋아, 어쩜 좋아. 여기가 빵집이 아니라 우이동 골짜 기나 뚝섬 같은 데면 얼마나 좋겠어. 나 너무나 좋아서 팔딱팔딱 뛰고 막 소리소리 지르고 싶어 미치겠어.」

두 팔을 바르르 떨어대는 강숙자의 얼굴은 정말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108 「술 마실 줄 알아?」

강숙자는 속삭이듯이 물었다.

「담배도 피울 줄 알아요.」

「어머나, 역시 일표는 매력 만점이야. 담배는 언제부터 배웠는데?」

「한 서너 달 돼요. 벼락치기로 밤샘 시험공부하면서부터요.」

「저런, 저런 불량학생. 딱 퇴학감이었네. 담뱃값이 얼마나 궁했을까.」 강숙자가 웃으며 혀를 찼다.

109 술 잘 마셔요?」

유일표가 의자에 몸을 부리며 물었다.

「왜애? 여자가 술 마시는 게 불만스럽다는 말툰데?」

「......」

116 「그래, 홍성기 걔 함부로 보면 안 돼. 중학교 때 나하고 한 반이었는 데, 거칠기도 하고 독기도 있고 아주 묘해. 수학시험을 50점 맞고 선생 님한테 야단을 맞으면 다음 시험에서는 100점을 맞기도 해.」 허진이 무언가 생각 깊은 얼굴로 말했다.

123 그야 오브코우스 하고도 물론이지. 그까짓 음식이야 맨날 먹는 거구. 우리가 만나는 건 인생을 해피하게 엔조이하자는 거니까 분위기가 좋아 야지.」

그 여자들의 입에 오르고 있는 꼬부랑말은 그들이 대학물을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미국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배운 사람들일수록 심했고, 여자들끼리는 경쟁이라도 하듯 한층 더했다.

164 「워다가, 자네가 고무신 땜질을 골라내지 안 했음사 나야 머시가 돈벌 이 잘되는지 이적지 몰랐을 것이구만. 자네는 눈치 빨르고 영리하고, 많 이 갤찼으면 아조 크게 되았을 인물이여. 나 겉은 놈헌테넌 과만허제」

「얼라, 소쿠리비행기 태우지 마씨요.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여자가 무 신 큰 인물이 되야라.」

해남댁은 부끄러우면서도 그 칭찬이 결코 싫지 않았다.

214 대대장님이 뭐가 모자라서 남의 선거참모 노릇이나 한단 말입니까?

216 「그럼, 그림, 제놈들이 그 시절에 살았으면 별수 있었을 것 같애? 박 말로 그 시절에 친일은 아무나 할 수 있었는 줄 알아? 무식하고 못나면 친일도 못했다구. 더 왈가왈부할 것 없어.」

친일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십중팔구 이런 사람들 앞에서 친일파를 비판한 사람은 꼼짝없이 '촌놈'이 될 수밖 에 없었다.

223 참새끼들이 이리역서 접수고 염병얼 허드랑께.」

김선태의 성난 투덜거림이었다.

「그러니까 검정물을 들여 입어야지, 그게 규칙인데. 더 붙들어두지 않 고기차 태워 보내줘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어서 가자.」

김선오는 '색시 구함'이 창피하고도 쑥스러워 동생의 어깨를 쳤다.

「치, 인자 물 안 딜여 입어. 당할 것 다 당혔는다.」

김선태는 오기 박힌 말을 내뱉으며 걸음을 떼어놓았다.

225 네에,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뜨신 밥으로 해 올릴 테니까요.」

주인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더없이 싹싹했다.

김선오는 그 넘치는 친절에 정을 느끼기보다 등골 서늘한 냉기를 느 끼고 있었다. 그 친절은 친절이 아니라 인간의 간사함이고 약삭빠름이 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자 주인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식모아주머니 까지 확 달라졌다.

243 「저것을 진작에 등때기에 풀물 디래부렀어야 허는디 말이여.」

송동주는 멀어져 가는 김광자를 실눈을 뜨고 바라보며 짭짭 입맛을 다셨다. 등때기에 풀물 들인다는 것은 남녀가 밀밭이나 보리밭에서 남모르게 정을 통한 것을 뜻하는 거였다. 그 말은 「저 여자하고 어떤 사이야?」 하 는 경우, 「등때기에 풀물 디래부렀제」 하며 곧잘 쓰였다.

「맘묵으면 뚫리게 되야 있는 것이 그 구녕잉께 때야 안 늦었제. 워디 두고 보드라고 잉!」

송동주는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내갈기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260 「나는 박정희 찍어주기로 결정 봤다.」

「예에………………?」

「와따. 불총 맞은 멧도야지맹키로 워찌 그리 놀래고 그냐?」

유일표는 정신 나가지 않았느냐는 눈길로 서동철을 쳐다보고만 있었 다. 그런데 서동철은 느린 손놀림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비식비식 웃 다가 입을 열었다.

「그려, 니가 그리 놀랄 만허제. 1년 간 똥줄 빠지게 그 꼬라지 당허고 도 무신 초친 맛으로 박정희 찍을라고 허냐 그런 뜻이겠제? 근디 말다. 그 쬐깐헌 사람이 좌익을 혔다고 안 혀?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한 시절 에 우리 아부지허고 동지였던 심인디, 고것이 신통방통하고 솔찬허덜 안혀?」

261 박정희가 15만여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전라남도에 서 몰표가 나왔다. 그러자 '박정희는 전라도 덕에 대통령 되었다'는 말 이 금세 퍼졌다.

262 우리말의 기본 율조인 3.3조라서 부 르기 쉬운 그 이름의 '새나라'는 어디인가. 그거야 넓게 잡으면 5·16 이 후의 군사정권이 다스린 나라부터 말하는 것이었고, 좁게 잡으면 대통령 선거 이후의 박정희정권이 다스맇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267 글쎄요, 그놈이 공부를 좀 한다고는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 라는 고등학교에 합격해 줄 것인지.」

정동진의 말투는 퍽 겸손했다. 그러나 흐뭇해 하는 얼굴에는 자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야 아버님 닮았을 테니 틀림없겠지요. 씨는 못 속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임상천의 인심 후한 덕담이었다.

275 한인곤이 동업을 거부한 것도 그때의 일 로 자신을 불신한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의 곧은 성격으로는 그럴 확률 이 컸다. 그러나 임상천을 소개해 준 것을 보면 그는 역시 마음 넓은 데 가 있었다. 어쨌거나 자신에게는 야당 국회의원인 한인곤보다 집권당 안에 자리잡고 있는 남재구가 더 필요한 존재였다.

289 「아으....... 으으. Γ.

으깨진 신음과 함께 임채옥은 유일민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처녀가 떠나가는 통증 속에서 임채옥은 마침내 사랑이 완성된 환희를 느끼며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숨이 자지러지고,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전신이 녹아내리는 절정의 회오리에 휘말리며 유일민은 오로지 남성의 격정에 몰입되고 있었다. 격렬한 몸부림이 가라앉으면서 유일민의 몸뚱이는 임채옥의 몸 위에 허물어져 내렸다. 그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고,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임채옥은 한 팔로 유일민을 감싸안고 다른 손으로 땀 밴 유일민 의 등을 천천히 문질렀다.

「이젠 영원히 저는 오빠 거고, 오빠는 제 거예요.」 임채옥이 속삭였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유일민은 쉰 듯한 목소리였다.

290 마음을 막으며 피하고 피해온 육체관계가 일으키는 그 현격한 변화에 유일민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사랑에 있어서 육체란 정신을 능가하는 마력을 발휘하고, 사랑을 결속시키는 힘의 원천이었다.

292 「사랑해, 채옥이.」

유일민의 손은 임채옥의 거웃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유일민의 가슴 에서 불길이 일며 그것이 불끈 곤두섰다. 임채옥의 몸이 열기를 발산하 며 경련을 일으켰다. 유일민은 자신의 건강한 남성에 환호하며 이불을 걷어찼다.

어둠에 익은 유일민의 눈앞에 임채옥의 알몸은 아름답게 드러나 있었 다. 유일민은 아까와는 다른 자신감으로 불붙는 몸을 임채옥의 알몸에 밀착시켰다.

바람소리가 멀리 비껴가고 있었다.

 

 

4권

37 「그게 말입니다....... 얼핏 보면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이 더 손해일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 니까....... 왜냐하면 딴 그릇에 따로 내와도 깍두기가 모자라게 되면 사 람들은 또 달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갖다 주느라고 일손만 많아지게 됩 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 일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또 딴 그릇에 두 번 내온 것이 많아서 남기게 되면 그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씩만 꺼내 먹으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두면 인 심을 후하게 쓰는 것 같아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하고, 그게 더 손님을 끄 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39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술집으로 데려가 한 말이었다. 술따르기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 주도라는 것은, 주전자 주둥이가 술잔에 닿 아서는 안 된다. 술이 한 방울이라도 술잔을 넘치게 따라서는 안 된다. 상대방에게 술을 받아 입에 대지도 않고 바로 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주량을 모르고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상대방보다 먼저 취해 서는 안 된다…………... '안 된다'의 연속으로 나가다가, 여자는 예쁜 것과 덜 예쁜 것을 배치해 상대방이 예쁜 것을 차지하게 해야 한다. 상대방이 맘껏 여자와 즐길 수 있도록 먼저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상대방이 술 을 깨 부끄러워할 정도로 야하게 놀게끔 미리 아가씨들에게 손을 써두 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로 바뀌면서는 상대방 공략법이 되고 있었다.

89 「그래, 애썼다. 자아, 이것 받아라.」

한 사장은 바삐 용돈을 종이에 싸서 학생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니, 아닙니다.」

「어른이 주는 심부름값은 받는 게 예의니라. 이건 돈이 아니라 마음이거든.」

「......예, 고맙습니다.」

201 두 개의 불덩어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 불덩어리는 맹렬한 불길을 일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울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은 휘감기고 솟구치고 뒤엉켜 용틀임하며 붉은색에서 푸른색이 되고, 푸른색에서 흰색으로 열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이윽고 흰색의 불꽃은 마지막 섬광을 내뿜으며 절정의 경련을 일으키더니 허망할 만큼 빠르게 잦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불꽃이 사라진 불덩이는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육신이 재로 사그라져가는 아스라한 의식 속에서 유일민은 이성이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서로를 갈구하 는 사랑 앞에서 그런 것들은 참으로 미약하고 부질없는 다짐일 뿐이라 그여겨졌다. 사랑의 완결감을 향해 치달아가는 육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영혼과 별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또다른 영혼이 아닐 까………………. 유일민은 의식의 잿더미에 묻혀 임채옥을 영원히 갖고 싶은 욕심의 싹이 파랗게 돋아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219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변화에 최주한의 관심은 쏠려 있었다. 지난번 선거에서 박정희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하는 전라도에서 이번에 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 거였다. 박정희에게 표를 찍지 않은 전라도 유권 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너무나 뚜렷했다. 지난 4년 동안 경제개발을 한다면서 전라도를 외면하고 편파적으로 경상도에만 투자해 지방을 차 별했다는 것이다. 고향사람들의 그런 항변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최주 한은 고향을 떠나 공부하느라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229 안경자는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어머니는 능란하게 말을 맞추었지만 속셈은 명동의 양장점들을 한바탕 구경하고 싶은 것이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속내를 짐짓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넘기는 거였다.

239 아니, 나한테 따라주려고? 그런 주도는 어떻게 아셨나 그래?」 신지훈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입이 벙그러졌다.

「몰랐어요? 전직이 기생인 거.」

「하하하하……………….」

 

 

5권

73 「오늘 우리 장날이잖아. 지금쯤 보급창에서 물건들 싣느라고 좆 빠지 고 있을 거야.」

이상재 역시 그 말투가 일류대학 법대 졸업생이란 흔적은 찾을 수 없 이 천상 육군 병장이었다.

「좆 빠져서 남 주나요. 즈이도 병장 달면 다 찾아 먹을 건데.」

이상재의 대학 1년 후배인 박 병장이 탁자에 캔맥주를 놓으며 말했다.

74 그러면 담배 한 보루를 예로 듭시다. 모든 PX물건들은 판세 없이 들어옵니다. 그걸 미군이 1딸라에 샀다면 PX에서는 일단 얼 마간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리고 미군이 그 담배를 암시장에 넘길 때는 또 이익을 챙깁니다. 그럼 관세를 한 푼도 못 받은 우리나라는 이중삼중 으로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PX에서 물건을 많이 풀어낼수록 미국은 자기 나라 기업들을 도와 좋고, PX에 이익이 많이 떨어져 비공 식 군사비에 활용해서 좋고, 자기네 군인들 용돈 벌게 해서 좋고, 자기들이 풀어놓은 딸라 되걷어가서 좋고, 그 이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월남의 미군 PX에 넘쳐나는 그 많은 물건들이 꼭 미군들한테 필요한 정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상재는 맥주로 목을 축이며 중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야 말 하나마나 아니오. 무한정 쏟아져 들어오는 거야 어린애들도 다 아는 건데.」

87 사랑은 외로움을 먹고 사는 나무

108 그녀는 샤워를 가장 세게 틀어 물줄기를 노인의 하체에 들이댔다. 거 센 물줄기의 힘으로 똥이 씻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겉에 붙은 것일 뿐이고 살갗에 짓뭉개져 있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줄기를 오래 들이대도 소용이 없었다. 똥을 완전히 씻어내려면 천상 손으로 문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나 죽을 것 같애. 이 일을 어쩌면 좋아.

109 노인의 살찐 엉덩이 사이로 디밀어진 그녀의 손은 항문까지 닦아내고 앞으로 옮겨졌다.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노인의 그것 아래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웩 소리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우웩! 웩! 우웩!」

112 언제 나을지도 모를 환자에게 매달려... 할일 제대로 하면서 세금 많이 내고, 병원이 맡아서...

165 임의롭다 [任意--]

1.(무엇이)얽매이는 것이 없어 자유롭다

2.(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여럿이)서로 친하여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고 행동에 구애를 받지 않는 상태에 있다

이물-없다‘허물없다’의 방언

167 착각과 오만

216 충성 그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잡히는 것도 아니고

 

 

6권

10 서양에서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호의 표시

59 그 사람은 죽었지만 죽은게 아니야.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

93 기차보다 빠른 고속버스의 시대. 그건 분명 달라진 세상의 시작이고 더 잘살게 될 거라는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반발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호남 푸대접'이라는 말이 어느 때 없이 거세게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그것이 었다. 그동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거듭하면서 개발이 경상도 쪽으로 만 치중된 것은 분명했고, 그럴 때마다 '호남 푸대접'은 심심찮게 떠올라 정치권을 자극하며 그 해결을 위한 위원회 같은 것까지 만들어지곤 했었다.

「와따메, 고속도로 팽 뚫린 시상에 요놈으 뻐스는 워째 이리 들뛰고 난리판굿이다야. 처녀덜 시집도 못 가보고 방뎅이 다덜 깨지겄다.」

114 「왜, 최 씨예요? 어머, 보기하고 다르게 순진하셔라. 이런 데서 진짜 자기 성 쓰는 애들이 어딨어요. 이리 순진하신 걸 보니까 어쩜 아다라시 총각인지도 모르겠네. 나 오늘 재수 왔따다.」

최주한에게 붙어앉은 아가씨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그래, 너 눈 한번 밝아서 좋구나. 나 오산 쑥고개 양키부대에서 3년 동 안 썩으면서도 숫총각 딱지 못 뗀 순진파거든. 오늘 밤 네가 어떻게 좀 해 볼래?」

최주한이 능글맞게 감고 들었고,

「어머, 양공주 일개 사단이 있다는 그 유명한 쑥고개에서 숫총각으로 제대를 하셨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순진파셔. 내가 오늘 밤 특별히 공짜 로 싸아비스 해드릴게.」

169 강기수는 불안 속에서 22일의 광주 유세에 사람들을 몰고 나갔다. 박 정희 후보는 전남 개발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전남을 획기적으 로 발전시키기 위해 호남고속도로를 비롯한 10여 가지의 도로공사를 실 시하고, 3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할 2조 원 중에서 전남에 제일 많이 투입 해광주·목포에 공업단지를 건설하고 특히 광주에는 50억본(本)을 생 산하는 대연초제조창과 대형 우유가공공장을 건설하고, 여수·순천·광 양도 새 공업단지로 개발하고, 특히 여수는 제2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 한다는 거였다.

「얼라, 너무 과헌디. 뒷감당 워쩔라고.」

170 그런데 개표 결과는 그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현상을 나타낸 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표가 두 후보를 따라 칼로 무 치듯이 갈라진 것 이다. 그리고, 잇따라 서울대생들이 부정선거 규탄데모를 일으켰다.

182 천두만은 자신을 대할 때와는 달리 전혀 다른 사람, 엄하면서도 독기가 흐르는 무서운 서동철을 보고 있었다.

200 끝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으로 다시 고등고시 보겠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250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용진은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258 믿는게 홍판사야 나야? 부부일심동체

260 일표가 일표일로 부탁한게 한 번이라도 있어? 다 돕지 않으면 안 되는 남들 일을 부탁했지

269 그 말을 듣고 눈앞이 환해지는걸 느꼈어

270 앙드레김이 한석봉이야

혀는 짧아도 침은 길게 밷으려고 하네

273 넌 누나처럼 독한데가 있어서 뭐가 되긴 될거다

277 김명숙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자기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278 우린 친구잖아. 기름밥 함께 먹었던

286 유일민이 자신의 장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290 제가 63년에 상대를 나왔습니다.

291 처녀 불알만 빼고 없다는게 없다는 청계천 고물상

292 앓느니 죽자

293 일류대학 나온 불알친구라고 언제나 부하들 앞에서 자랑이었고

293 서동철이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295 간은 그만두고 젖꼭지도 안 떨어졌네

304 아무리 예비군이지만 군인은 군인입니다. 행동이 지나쳐 상부에보고하고 고발하는 등 불미스런 ㅅ태가 발생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예비군 사이에서 잡담이 금새 뚝 멎었다.

308 구보와 제식 훈련을 실시합니다. 여러분이 절도 있고 씩씩하게 잘하면 시간을 30분으로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려주겠지만 그렇게 못하면 휴게시간 없이 훈련을 계속하겠습니다. 모두가 인격적으로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7권

24 「차렷!」

유일민의 동작은 계속 민첩했다.

「쪼오아. 지금부터 차렷자세 그대로 취조를 받는다. 차렷자세는 부동 자세고, 부동자세는 벌이 쏴도 움직이지 않는 자세다. 알겠나!」

41 1972년 8월 3일 기업 사채 긴급 동결령

46 「그야 전라도사람 아니면 몰르는 설움이제. 정 씨도 눈치 빠형께 다 알 일인디, 요 빌어묵을 서울이란 디서는 날이 갈수록 전라도사람이야 허먼 무시하고 차별허고 의심허고 손꾸락질허고 안 혀? 우리 겉이 배운 것 없이 무식헌 것들이 그리 당험서 살기 에로운 것이야 그렇다고 치드라도, 똑같이 대학 나오고 똑겉이 똑똑헌 사람들이 전라도라고 혀서 출세길이 맥히고 취직이 안 되고 허는 것이 서울 아니여? 긍께로 서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정이 안 붙고 맴은 고향으로 쏠리기만 허제, 그런 드런 꼴 당험서 살잔께 그래도 사내자석 뱃속이라고 오기는 꼬약꼬약 괴올르제, 니기미헐 것, 망헌 짐에 더 망할 것이 머시가 있냐, 전라도놈 뱃보나 살리자 허고 우리 전라도말 써대는 것이여. 나 맘 알겠어?」 천두만은 열기 묻은 어조에 어울리게 담배를 기세 좋게 권했다.

「그래요, 경상도사람들에 비해서 전라도사람들이 찬밥 신세라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니유. 공무원이고 군인이고 판검사고 날이 갈수록 전라도사람들은 경상도에 치인다니 원.」

60 한몸하고 결혼하고가 의미는 같을지 모르지만 느낌은 같지가 않잖아

88 임채옥은 그 시간강사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 황인종은 괜히 흑인들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요? 백인들에 게는 괜히 열등감을 가지는 것처럼.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 이 안 통합니다. 황인종이 흑인 다음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늘의

미국을 건설하는 데 흑인들이 노예로서 바친 피땀의 공로를 인정해 백 인 다음인 두 번째 서열로 쳐주는 겁니다. 그 반면에 황인종들은 아무것 도 공헌한 것 없이 다 키워놓은 과일나무 열매만 따먹으러 온 것으로 취 급해 맨 뒤로 제쳐놓는 거지요.」

107 자칫 관심이 간섭으로 오해될수 있었다.

117 고개를 떨군 채 한동안 앉아 있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누군가가 자기 곁으로 다가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좌우 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어둠만 가득할 뿐 아무도 없었다. 당연 한 일이었다. 그 시간에 다리 한가운데에 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바로 곁에 선 사람이 들려주는 듯한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진흥아, 네 등에서 죽은 그 여자가 누군지 아느냐? 십자가에 죽은 나 예수다.」

120 수위는 송수화기를 놓으며 겨우 친절한 기미를 내비쳤다.

122 너 대기업의 밥을 먹는다고 너무 변해가는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127 허진의 오늘은 유일표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158 "어이 처남, 오랜만이시, 자네 내래왔다는 말 진작에 들었는다. 그래 음사이 매형헌티 인사 와야 되덜 안 혀?」

송동주는 여전히 비위장 두꺼운 소리를 서슴없이 했다. 자기가 큰누 나를 좋아했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이없어 김선진은 어색스럽게 웃었다.

168 하루 종일 열번이 넘게 걸었지만 끝내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를 피하는구나!

머리를 친 생각이었다. 정동진은 14~15년 전 자신이 예편당한 한센 곤을 그런 식으로 피했던 것을 떠올렸다.

정동진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틀림없이 도와주 리라 믿었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되짚어 생각해 보니 남재구의 선선한 대꾸와 부드러운 웃음은 빨리 자리를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 위장에 정신팔려 자신은 정작 남재구의 말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런 식의 부탁에서 '연구해 보겠다', '생각해 보겠다'는 것은 거절이라는 것이 통설이었다.

170 일민씨는 제가 이 세상에 와서 최초로 사랑한 남자이며 최후까지 사랑할 남자입니다......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찢어진 상처마다 피가 흐르 고 있습니다. 그 피를 찍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일민 씨. 앞으 로 5일 후에 저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마음은 두고 몸만 갈 수밖에 없습니다.......내 영원한 생명의 빛 일민 씨!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 다.………………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굴러떨어진 충격으로 유산을 했었습니다. 일민 씨의 아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 우리는 자식까지 가졌던 완전한 부부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법적인 부부가 못 된다는 것은 별로 큰 불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영원한 목숨이며 길인 일민 씨!………………아무 죄도 잘못도 없는 일민 씨를 배척하는 이 사회를 저 주합니다.......만약 이 돈을 받기를 거부한다면 그건 우리의 사랑에 대 한 배신입니다. 이건 돈이 아니라 저의 순금이 사랑입니다.........

180 그 말투는 당연한 덧 아니냐는 것 같기도 했고, 더 올라가지 못해 불만이라는 것 같기도 했다.

224 한인곤은 눈을 내려뜨고 커피가 잔에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줄기차게 출제하고 있는 남재구의 재주에 다시금 놀라고 있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이 수사기관의, 그것도 간부 방을 차지하고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존재로 그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지난날 정치를 시작하려고 하면서 그를 그렇게 찾아내려고 애썼던 것 은 그의 남자다움, 굳은 심지며, 신의를 지킬 줄 아는 기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등을 돌리고 말았다.

272 「그 사람이 고수하는 원리원칙이 어느 정도냐 하면 말야, 군대의 차는 사적으로 쓸 수 없다는 규칙을 지키느라고 큰딸을 잃어버린 사람이야. 무슨 말인가 하면, 전방 지휘관을 할 때 갑자기 큰딸이 아팠는데, 지휘관 찝차를 사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어. 애는 밤 새도록 앓고, 다음날에야 버스를 타고 몇십 리 밖 병원을 찾아간 거야. 그런데 급성폐렴이라서 애는 결국 죽고 말았지.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사장은 폭파를 막으려고 빽을 쓰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말았어. 그러니까 그 사람 앞에서는 눈가림, 속임수, 거짓말, 적당적당이 절대 통하지 않 는데, 그런 완벽주의를 실천하려다 보니까 직접 현장감독을 하느라고 서울의 집에 1년에 두세 번 올라오면 많이 올라오는 거라는 거야. 그러 기를 벌써 4년 했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그럴지 모른대. 그런 게 다 그 사람이 가진 남다른 애국심 때문이라는데, 하여튼 특이하고 대단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

276 음...... 그거 의문이 생길 만한 거로군. 그걸 한마디로 하자면 박통이 쓸 만한 사람 하나 잘 만난 셈이지. 두 사람은 단순히 군대의 상관과 부하 관계 이전에 육사에서 스승과 제자로서의 인연부터 맺은 사이야. 우리나라의 그 특수한 사제지간의 정이라는 것 있잖아? 그걸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는 깊어졌는데, 박 통이 그 사람을 얼마나 믿었는지 알아? 박태준을 쿠데타에 직접 가담시키지 않고 빼두었는데, 왜 그랬냐 하면, 쿠데타가 실패하는 경우 박 통 자신의 가족을 맡기기 위해서였다는 거 야. 그건 박 통이 직접 한 말인데, 어찌 보면 박태준의 영광 같지만 실은 박 통의 행복인 거야.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 을 갖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야? 내가 겪어본 바로는 박태준은 그렇게 믿어도 좋은 사람이야.」

277「그런데, 그때 남긴 에피소드가 또 희한한 게 있어. 일본에서는 우리 정부 쪽 인사들이 가면 으레 여자 대접을 했던 모양인데, 그 사람은 호텔 방으로 찾아든 여자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그때 아주 젊은 나이 아니었던가요?」

「그럼, 젊다마다. 서른일곱, 여덟, 그런 나이였지. 자넨 그럴 자신 있어?」

「저는 아직 그 나이가 안 됐으니 잘 모르겠구요, 부장님이 해당되는 데. 자신 있으세요?」

하하하하...... 내가 걸려들었네. 두말하면 잔소리로 나야 대환영이 있겠지. 술 다 끝났지? 이젠 밥 먹자구.」

279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고속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버스는 목적지 포항까지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될 예 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운행 중 안전을 위하여 한 분도 빠짐없 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 식수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여행 중 혹시 불편 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희 ○○고속을 많이 애용해 주시고, 저희 ○○고속은 여러분의 안전하고 편 리한 여행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무쪼록 승객 여 러분들의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04 이상재는 자신도 모르게 깊이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면서 한순간에 세 번 놀라고 있었다. 사장이 사원들과 똑같이 안전모에 작업 복 차림이었고, 뜻밖에도 키가 작았고, 그런데도 사람을 압도하는 어떤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8권

09 「빌어먹을, 난 절대로 머리 다시 안 깎고 그냥 이대로 다닐 거야.」 파출소를 나오며 송상균이 내뱉었다.

10 맞은편에서 오던 젊은 여자 셋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지 나갔다.

「웃지들 마시오. 이래도 애인 있는 몸이니까.」 송상균이 비위 좋게 한 마디 던지고는, 「가자, 기분 더러운데 어디 가서 한잔하자」하며 건널목 으로 내려섰다.

「오늘 참 재수 더럽기는 더렵다. 그동안 파출소를 잘 피해 다녔는데.」

김선진이 머리를 매만지며 혀를 찼다.

41 「이 사람아, 내 말 오해하지 말게. 자네 말 다 믿으니까 이제 와서 쑥 스럽게 그러지 말라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사람인데 그때 서 운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지. 허나 다 지난 일이고, 남재구가 나한테 한 것에 비하면 자네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고 말야, 나도 세상 살면서 그런 경우가 없지 않거든. 나이 쉰을 넘기고, 얼마 전 에 험한 꼴 당하고 나서 나도 많이 변했어. 그런 사소한 일 다 잊어버리 세.」 한인곤은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듯 아주 흔쾌하게 말하고는, 「그런 데,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그 사업이 망했다는 건 무슨 소리야? 요즘 유 행하는 것처럼 딴 사업을 또 벌렸었나?」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

「아니, 동업자 임상천한테 몽땅 사기를 당했어.」

47 「잘 이해해 줘서 고맙소.」

「그분이 어려우실 텐데 우선 제가 좀 돈을 드렸으면 합니다.」

임채옥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주고 간 돈이 그런 돈인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53 화류계 환갑이 스물다섯 살이라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59 「얘, 나 지금 배고파 죽겠으니까 우리 점심부터 먹고 디자인 고르자. 나 아침 안 먹었거든.」

「네에, 그러시지요. 고객은 왕이신데요.」

김명숙은 서양영화에서 윗사람을 모시는 몸짓을 흉내내며 기분 좋은 것을 감추지 않았다.

「어머머, 얘가 왜 이래. 그런다고 나 두 벌은 못 맞춰.」

박보금이 쑥스러워하며 김명숙의 등을 쳤다.

60 "공부해서 남 주니?"

'공부해서 남 주나?'라는 말은 살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미디언 서영춘이 유행시켜 놓은 말이었다.

63 "어서 먹자" 김명숙은 젓가락을 들며 다정하게 웃고는, " 그나저나 요새 경기 나빠져서 골치 아프다"하며 고개를 저었다.

91 "몰라요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서경혜는 방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104 화장실을 나온 배상집은 구석진 방의 문이 빠끔 열려 있어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문틈 사 이로 보인 두 사람, 바짝 붙어앉아 무슨 밀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그들은 틀림없이 북쪽의 백과 남쪽의 한이었다.

배상집은 너무 심한 충격에 휘둘리며 자기네 방을 지나쳐 정신없이 홀로 나갔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가슴은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헛것 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백과 한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한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 그는 얼굴을 훔쳐대며 정신을 가다듬 으려고 애썼다.

122 저쪽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선생께서 안 만나시려고 하시면 손해를 보실수도 있습니다.

123 이 사람이 점잖찮게 공갈이 뭐야. 같은 값이면 유인작전이라고 해야지

124 혹시 저희 질문이 거슬리더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것이니까 널리 이해해 주시고, 대답하기 싫으신 것은 대답 안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게 민다리씨의 억울한 입장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장사장의 부당한 행위를 폭로하느뉴기회라는 점을 아시기 바랍니다.

126 이상재는 고개까지 숙여 보였다

128 그의 노기는 자기를 직접 나서게 하는 아랫사람들의 무능에 대한 힐책이었다.

137 「벌써 한잔씩 걸치셨네. 술대접 잘 받고 촌지도 두둑이 챙기셨어?」

편집국장이 능글맞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예, 평생 먹을 것 챙겼습니다.」

이상재가 쓰게 웃었다.

「수고들 했어. 이것도 다 경험이려니 해둬. 내가 언제 술 한잔 사지.」

편집국장은 슬픈 기색의 웃음을 지으며 두 기자를 한참씩 쳐다보았다.

137 곧 쓰러지려는 이상재를 허미경이 붙들었다. 그러자 이상재가 허미경 을 와락 끌어안으며 키스를 퍼부었다. 처음에 몸부림하던 허미경도 이 상재를 끌어안았다

143 천두만은 씨름판에서 황소를 따먹었다고 엄포를 놓으며 지게를 벗어 부쳤다.

149 「그래요. 나도 서울말이 별로 맘에 안 들어요. 그렇지만 장사를 하려 고 서울말을 억지로 배웠어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전라도말을 싫어하니 까 장사를 해먹으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아저씨도 싫은 생각은 속으로 만하고 서울말을 쓰도록 하세요. 내 이름 알아둬요. 서수철이오.」

157 천두만은 서동철 앞에서 했던 것처럼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159 이놈의 세상은 온통 속임수판이고, 걸리지 않고 잘 해먹는 놈이 장땡인 세상이었다.

166 개는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느새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179 다 알제라 이?

182 내가 누구 때문에 6년 동안이나 그런 고생을 했던가...... 두 오빠와 동생은 누구 덕에 다 대학을 나왔는가...... 다섯 식구는 그동안 누구 힘으로 먹고 살았는가. 1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게 만든 짐이었던 형제들이 나를 짐으로 생각하다니....... 나한테는 아무것도 갚은 것 없이 짐이라고 생각하다니........ 형제간들이 나를 귀찮아하는 눈치는 얼핏얼핏 했었지만 어머니까지 그들의 편을 들다니...... 나는 무엇인가, 내 희생은 무엇인가.......

188 은혜 입은 사람은 그 은혜를 쉬 잊고 은혜를 입힌 사람은 잊지 않아 인간사에 온갖 탈이 생긴다고 했니라. 은혜를 입힌 사람의 공은 저승까지 가는 법이니까 니도 다 잊고 새로 시자해라.

192 자신을 경계하는 것은 오빠들 보다 올케들이 더 심했다.

200 머리 검은 짐승 기르지 말라.

209 강숙자의 글솜씨는 참 신통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글이라는 것이 묘 하고도 신기했다. 단어 몇 개를 바꾸거나 끼워넣고, 새 문장 하나를 삽 입시키면 건조하고 딱딱하기만 하던 글이 금세 윤기가 돌고 부드러워지 고는 했다. '멘스는 계절에 따라...... 하는 대목이 '멘스는 이런 낙엽 흩날리는 계절이면......'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215 「원장 선생님, 저 또 임신한 것 같은데 어쩌죠?」

강숙자가 갑자기 환자인 것처럼 말하며 얼굴까지 찌푸렸다.

「애, 농담이라도 그런 말하지 말어.」

「아니야. 그게 두 달째 안 비쳐. 재수 없게 걸렸나 봐.」 강숙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217 네, 네 박사님

218 강숙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유일표의 재건대로 들어섰다. 「아니, 언제 올라오셨어요? 온몸에 촌티 묻혀가지고.」

유일표가 반갑게 웃으며 첫마디부터 농담을 던졌다.

「아이구, 넝마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서울이라고 폼잡는 것 보게. 가. 점심 먹으러

219 위기를 느끼니까 분야마다 자기네 사람들을 배치해 단단히 성벽을 쌓아

220 우리 서로 사랑했었나 부지? 맺을 수 없는 사랑.

240 내가 재벌가 사위 모셔 왔으니까 맘 놓고 마셔

241 여태껏 말없이 앉아 있던 이상재가 불쑥 말했다

245 실직 7개월만에 저 꼴이 됐으니 사람 버리기 잠깐이라니까

250 아서라 천당 가려면 맘 곱게 써라

250 요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봤나. 형수님이라고 받들어도 도와줄까말깐데 재수씨라니. 말하나마나다.

251 전환시대의 논리

257 손진권은 겸손한 듯하면서도 거만스러워 보이고 가식인 듯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이는

266 부장 검사라서 그런 배짱이 생기는 것인지, 그런 배짱이 있어서 부장 검사가 된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

283 배상집은 교수의 '내 사람'이라는 말을 되짚으며 안도하고 있었다.

287 김 사장의 집요함에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유일민은 말머리를 돌렸다.

288 김기돈 유일민 선배 사장. 같은 대학 공대 졸

302 그 여자는 이 동네를 떠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사람으로 길들여져 살게 될 거였다.

309 예 말이오.

317 국회로 보냅시다.

 

 

9권

07 문태복은 돌아누우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벽을 향해 옆으로 누운 아 내는 알몸인 상체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불을 확 걷었다.

아내의 알몸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불그스름한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 의 알몸은 더욱 날씬하고 탄력 있게 보였다. 집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라서 그는 잠자리를 옮기기 잘했다는 생각을 또 했다.

이 날씬한 몸을 1년 동안 품지 못하게 되다니.......

문태복은 이 생각과 함께 다시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 에 저 아래서 힘이 뻗쳐올랐다. 벌써 몇 차례 일을 치러 뻐근하면서도 그것은 기를 세웠다.

그는 뒤에서 아내를 껴안았다. 탱탱한 탄력을 지닌 크도 작도 않은 유 방이 손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전신이 짜릿거리는 자극 속에서 자신의 알몸을 아내의 알몸에 밀착시켰다. 자신의 그것이 아내의 거기에 닿았 다. 그는 전신을 떨며 아내의 몸을 더듬어내렸다. 배꼽을 지나 거웃이 잡혔다.

「으응………………. 왜 이래요........

그의 아내가 잠에 취한 소리를 흘렸다.

그는 거웃을 쓸고 아래를 거세게 흔들어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미 거칠어진 숨소리도 그녀의 귓전에 뜨겁고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머, 당신……………….」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잠기운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의 뜨겁고 딱딱한 그것은 아내의 그 부분을 압박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14 그의 군대식 어투에 겁먹은 것인지 그렇게도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20 그는 벌써부터 사내들의 기세 싸움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21 문태복은 기를 죽이는 김에 더 죽이려고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25 문태복은 당해도 혼자 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박창식을 생각해 주는 척 물었다.

26 기다리시오. 내가 비행기 만든 사람에게 전화걸어보고 알려 줄테니까

27 호송관은 마치 자기가 비행기를 몰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거만스러운 웃음을 띠운 채

37 딸 숙자의 공박이었다. 숙자는 공부를 싫어했던 것에 비해 아는 것이 많고 야무졌다. 판사 남편을 휘어잡고 알뜰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 을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들놈이 숙자만 같아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38 「열심히 해봐야지요.」

며느리가 믿어주세요' 한 것처럼 아들도 야무지고 속시원하게 한다 디했으면 좋으련만 두 번째 대답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나마 며느리 가 당찬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관공서사람들에게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특히 실무자들에 게는 건수마다 돈을 줘라. 돈은 아무도 모르게 주고, 그 비밀을 꼭 지켜 라. 그들과 술을 마시자 말고, 더구나 값비싼 술은 절대 마시지 마라. 술 을 마시면 실수하기 쉽고, 아무리 호화판으로 술을 사줘도 현찰에 비해 고마워하지도 않고 효과도 별로 없다. 돈은 한꺼번에 많이 주는 것보다 자주 주는 것이 좋다. 말은 적게 하되 유식한 말을 많이 쓰고, 속을 감추 는 동시에 친밀감을 갖게 하기 위해 농담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간부들 에게는 무조건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명절 때마다 값나가는 선물하 는 것을 잊지 마라, 업무상 관계가 없다 해도 경조사에는 그 누구에게든 성의를 표시해라. 그 다음이 일반 유권자들을 대하는 것인데, 노인네들 과 아이들에게 특히 잘해야 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무거운 것을 이고 가는 할머니들을 보면 꼭 태워다 주고, 할아버지들이 장기판을 벌이고 있으면 살붙게 인사하고 소주병을 사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싸우는 아 이들을 보면 뜯어말려 사탕을 사주고, 어떤 때는 모여 노는 아이들에게 공책이나 연필도 사줘라. 그리고, 동네 잔치를 만나게 되면 돼지 한마 리쯤 잡도록 해줘라. 그렇게 해서 인심 피지 않을 곳 없고, 그렇게 다져 진 인심 이길 장사 없다.

아들 내외를 광주로 내려보내며 다짐한 말이었다.

38 돈은 한꺼번에 많이 주는것보다 자주 주는 것이 좋다. 친밀감을 갖게 하기 위해 농담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무거운 것을 이고 가는 할머니들을 보면 꼭 태워다 주고

48 사람이 의리는 없어도 염치는 있어야지

52 어이 동주 워쩔 것인가?

61 사업은 머리로 하지 말고 발로 하거래이 시장통에 나앉은 행상이라고 생각해야 된데이

65 사무실의 첫 방문자는 서경혜 부부였다. 서경혜를 뒤따라 유일표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상재가 대뜸 한마디 던졌다.

「저 넝마주이는 뭐 하러 나타나. 늦장가가더니 의처증 동하는 모양 일세.」

「그래, 위태위태해서 못살겠다. 너 같은 미남 자주 만나니까.」

유일표가 빙긋 웃으며 받았다.

79 이규백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80 법조계에 두루 아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필요에 의해 연결되고, 서로의 잇속에 따라 웃음을 나누었던 또다른 백 검사고 황 검사일뿐이었다.

98 저쪽에서 몸달아 덤벼야 검사로서 값도 오르고 뒤탈도 없는 것이지 이쪽에서 먼저 몸짓해서는 흠집 잡히고 헐값이 될 위험이 컷다.

103 우리 족보는 워낙 양반이라서 말씀이야

114 십장님. 나 어쩌지요? 보안경 마누라한테 선물로 보냈는데.

131 우리가 쉬쉬할때 눈감아 줄 수 있는 거지 떠들어대는 데도 눈감아 줄 수 있어?

132 오늘 밤에는 노무과 순찰이 강화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34 백일 얘기들 앞으로 나오슈

136 처음에 밀주를 만들어 먹다가 들켜 귀싸대기를 얻어맞았기 때문 에 그렇게 붙여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연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145 자넨 여기서 한 닷새쯤 쉬다가 나가면 돼. 저 세 사람을 풀어줄 때에 맞춰서 말야. 세 사람은 지금 자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줄 알거 돈 그 대신 세 사람은 고문 없이 점잖게 다루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들 든그 은 자네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저희들 셋이서 서로를 의심하게 되지. 그들은 풀려나서도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하며 영원히 원수처럼 돼버리 지. 미안하고 죄스러워 자네도 피하게 될 거고. 자넨 만나면 거북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안 만나게 되는 거니까 마음 편한 거고. 어때. 자네가 원하는 대로 깨끗하게 해결됐지?"

149 내가 그쪽으로 갈게. 여기보단 그쪽이 싸구려 술집이 더 많잖아.

좋아. 아우가 당연히 형님 뵈러 와야지.

버릇없이 형님 소리 두 번씩이나 했으니까 술값은 네놈이 내.

이런 도둑놈!

150 그리고 그는 자기 담당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부 서 전체의 업무에 대해 세세한 숫자까지 암기해 버렸다.

151 그렇지만 그를 욕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개 선배나 동료들이었고, 후배 사원들 은 경이롭게 생각하고 부러워했다. 그는 1년이 못 되어 또 부장으로 특 진했다. 사장의 외국 출장을 수행하는 데 과장 직함은 격에 맞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그가 최연소부장이 되자 그를 향한 질시와 험담도 현저하 게 줄어들었다. 그가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 앞에 사람들은 마침 내 굴복한 것이다. 기획실은 사장의 두뇌이며 회사의 심장이었고, 사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부장의 실세 앞에 사람들은 약삭빠르게 몸 을 사렸다. 전문 지식으로 무장된 능통한 영어와 서양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세련된 매너로 그는 많은 일을 성사시켜 사장을 흡족하게 해주었 다. 마침내 사장은 그에게 기획실장 자리를 선물했다.

「너희들한테는 정말 미안해. 그동안 친구 노릇 너무나 못해서.」

기획실장이 된 다음 술을 사면서 허진이 한 말이었다.

156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

164 이런 말 대통령이 들어야 해요

179 산지락 동네 성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191 예, 그럼 일하는데 쓰겠습니다.

197 인과응보

204 임 양이 아버지한테서 돈 오기 전에 급한 대로 쓰라며 임 양의 돈을 내놓았을 때 난 참 감격했고

219 많은 돈이 나를 보호할 수도 있다.

222 어이 최씨 어젯밤에 딸딸이 잡고 생고생 시키더니 거긴 깨끗이 씻었어?

223 이래뵈도 최씨가 양반인거 몰라

224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문에 유식한가

224 지방이야 고향에서 어른들이 근사하게 써 붙이시지 않았겠어

230 자신이 책임자가 된 터에 하루가 무사하게 지나가지 못하게 되어 입맛이 썼다.

248 돈은 귀신도 부린다.

255 「어디 봅시다. 나도 좀 얻어먹을 만한가.」

김기돈은 큰소리로 농담을 던지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아이쿠, 공사부장님!」

「지, 지금은 근무시간 아닙니다.」

259「예, 제가 여기 3년 있었는데 전에도 그런 일이 서너 번 있었습니다. 귀국을 앞두고 죽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첫아들 돌에 맞춰 휴가를 받아 놓고 죽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도 너무 좋아하면서 며칠 전부터 통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김기돈은 그만 무색해져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더구나 그런 허망한 죽음도 있다는 것이 더 말을 잊게 했다. 그는 긴 한숨을 쉬며 막사를 나섰다.

275 그래서 난 돈이 아깝지만 날마다 목욕탕에 가. 앤 줄 알어? 거기서는 발가벗은 여자들 몸을 맘껏 구경할 수 있거든.

275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여러 가지 옷 모양을 종이 위에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건 무슨 신통한 재주가 아니라 하도 많이 그리고 그려서 한번 눈여겨보당 그렇게 된다고 했다.

그런 일들을 알고 나서 김명숙을 시샘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김미 숙의 그 묘한 재주를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자신도 화류계생활 10년- 넘기다 보니 남자들을 척 보고도 직업이 무엇인지, 주머니 사정은 어 지. 성격이나 마음씀은 어떨 것인지 꿰뚫을 수 있었다. 어차피 김명숙 자신은 딴 길을 가게 되어 있었다. 진작 그렇게 마음먹었으면서도 김 숙의 양장점 앞에만 서면 왜 배가 사르르 아파지는 것인지 알다가도 를 일이었다.

그래, 다 팔자소관이지. 이제 와서 엎겠어, 뒤집겠어. 이 명동에서 척척 맞춰입게 됐으면 나도 폼나게 성공한 인생이니까.

278 요런 얌체 서울내기 다 됐다니까

279 너, 그렇게 말하니까 아주 철들어 보이고 더 정이 든다 얘

280 뭐라구? 벌써부터 빽 쓰는거야

281 디자인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 김명숙은 아까 수다를 떨 때와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

282 눈치 하나 빨라 좋네

290 김명숙의 말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내용에는 사업가의 차가운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296 김명숙은 박보금의 반응을 묵살한 채 최 감독을 처음으로 똑바로 바 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손님의 몸을 재고 디자인을 스케치할 때처럼 진지했다.

297 어머머머 저 내숭, 저 내숭. 저게 사람 여럿 잡겠네. 저거 아주 맹랑하 네. 단수가 보통이 아닐세.

320 "형님들 보고 이것들이라니. 아우는 언제 온 거지"

이상재가 최주한과 반갑게 악수하며 웃었다.

323 보름 쯤 지나 이상재는 최주한의 전화를 받았다.

「너 돈 쓸 일 생겼다. 이 형님 덕에.」

「돈………………?」

「빨리 송별회 차리라구.」

「송별회?」

「이새끼,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구나. 나 사우디로 떠나, 임마!」

324 이상재는 최주한이 떠나는 날 공항에 나가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터졌던 것이다.

「잘 나가던 책이 어째 지방에서 시들시들 풀이 죽는 감이 들더라구요. 근데 글쎄 이번에 우리 부장이 지방 출장을 가서 보니까 저쪽에서 책을 왕창 찍어 50프로로 펌핑을 쳐버렸더라는 것 아닙니까. 전에도 그런 일 생기면 한 2만 부 찍어 40~50프로로 지방에 쫙 깔아버리면 지방에선 마진 크니까 그 책만 팔고 께임 끝나요. 이쪽에서 신문에 내자 저쪽에 선, 그래 좋다. 하고 뒷방 까고 나온 건데, 신문에만 낼 것이 아니라 그 놈이 그 짓을 못하게 미리 막았어야지요. 이거 원, 베스트셀러 되긴 그 른 것 같고, 창고에 있는 책이나 재고 없이 팔아치워야 될 텐데 골치 아 프네요, 이거.」

 

 

10권

09 더구나 보푸라기가 일고 곧 구멍이 날 지경으로 낡고 낡은 그녀들의 팬티는 안쓰럽기 그지없었고, 시장에서 금방 사 입고 온 것이 분명한 새 팬티를 어쩌다가 대할 때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0 그거 아무 걱정할 거 없어요. 아무 표도 안 나니까. 의사인 나도 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처녀인지 아닌지 전혀 구별을 못해요. 그러니까 안심해요.

10 그건 남자들이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애를 낳으면 배가 트니까 표가 나지만 수술을 해서는 절대 표가 안 나요. 의사인 내 말을 믿어요.

11 그렇게 당한 사실을 깨끗하게 잊어버리란 말이에요. 나는 처녀가 아니다 하는 생각을 마음에서 깨끗이 지워 없애라 그거예요. 나도 여학생들처럼 높이뛰기하고 뜀틀뛰기했다 하고 그 일을 깨끗이 잊어버 리면 그때부터 자기는 처녀가 되는 거예요. 이 말 명심하고, 오늘부터 마음 편히 먹으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13 그래, 고생스러워 아주 죽을 지경이다. 이 은혜 어떻게 다 갚을래?

15 「수술비는 안 내셔도 돼요.」

간호원이 돈을 내미는 미자에게 말했다.

「아니, 왜요?」

미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장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그 돈으로 몸조리 잘하라구요.」

「어머나..………….」

16 그들은 택시를 탔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처음 타보는 택시였다. 두 사 람은 아무 말이 없이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택시를 내려 셋방에 들어설 때까지도 말이 없었다.

23 사람들은 이장의 귀에 달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속으로는, 홍시감 떨 어질 때 된께 떨어진 것이제, 하면서도 세상살이 눈치코치가 재빠른 사 람들은 그런 미운 털 박힐 소리는 싹 감추었다.

24 사시사철 쌀밥만 묵는 놈은 쌀밥 맛난지 몰르드라고 우리야

25 천지 백 가지

57 「저는 이 깨끗한 바닷물에 몸을 씻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요.」 임채옥의 목소리는 또렷해져 있었다.

「아니.......」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잖아요. 저는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요.」 임채옥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했다.

「오빠도 빨리 옷을 다 벗으세요. 이제 우리 인생이 새롭게 시작돼요. 임채옥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³

92 「나 지방 다녀와야 하니까 며칠 있다가 꼭 다시 와줘. 내가 그동안 말 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다만, 오늘날 내가 있는 게 다 누구 덕이냐? 일표 하고 너희들이 도와준 덕 아니냐? 그걸 잊으면 사람이 아니지. 이런 때 아니면 내가 언제 일표를 도울 수 있겠니. 일표는 나 같은 놈 돈 필요 없 다고 할지 모르지만 말야.」

「그래, 고맙다. 너 바쁘니까 이만 가야겠다.」

이상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허진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되 어 그렇게 마음 흐뭇하고 개운할 수가 없었다.

94 참 인생사란 묘하고 야릇한 것이었다. 최주한과 허진은 사람 살아가 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출 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꼭 학벌로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으로 판 가름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 둘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학벌로 치 자면 최주한이 허진을 단연 압도하는 일류대학이었고, 수출신장시대에 새로운 무기로 등장한 영어실력에서도 최주한은 카투사라는 이상한 군 대에서 3년 동안 익힌 회화로 그 발음의 유창함은 허진이 오히려 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허진은 한 회사에서 뿌리박아 사장이 가장 신임하 는 중역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최주한은 고작 관리부장으로 사우디의 폭염 속에서 고생고생하며 친구들에게 왜 답장 빨리빨리 보내지 않느냐 고 푸념을 늘여놓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97 김진택 이상재 민족사상연구회 친구 흑곰 별명

119 박준서의 몸에는 흔히 사교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풍기게 마련인 좀 능글맞고 비위 좋은 세련됨이 배어 있었다.

「이거, 변호사 사무실에도 가야 하는데........ 원병균은 시간 길게 끌 생각 말라는 듯 이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 켰다.

132 노느니 염불한다.

133 열다섯에 머심으로 지게 지고 나섰으면 서른다섯에 벌써 황천길 가게 몸이 파삭파삭허니 되야부렀다 그것이여

134 우선 묵기는 꼬깜이 달드라고

136 「예에, 안녕허세요. 곧 배달허겄구만요. 무슨 잔치 있으세요?」

같포댁은 딸하고 말을 할 때와는 다르게 서울말투를 쓰며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139 나복남은 입으로 할말은 다 하며 손은 부지런히 놀려 물건들을 내려 놓고 있었다.

167 아까 먹통방에서 들었던 초침 돌아가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167 배상집은 세 시간 정도 걸려서 자서전이라는 것을 끝냈다.

168 배상질은 검정 지프를 타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지프는 집이 멀지 않 은 곳에서 멈추었다. 배상집이 내리자 지프는 곧 떠났다. 그는 전신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비실비실 전봇대에 몸을 기댔다.

이봐, 한잔 더 하자구.」

「미쳤어. 벌써 11시 반이 넘었어.」

술 취한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181 「고맙소.」

한인곤은 의자에 앉으며 동 직원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러면서, 내가 현직이면 허겁지겁 앞장서겠지? 하는 생각으로 쓰게 웃었다. 그러나. 갓끈 떨어져버린 위인인데도 이만큼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고맙다 싶 기도 했다.

188 「이거 대낮부터 술을……………….」

임종국이 어물어물 일어나며 웃었다.

190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적인 글이 아니고 자기가 직접 겪은 수 기 형식의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월간지에서 모집하는 수기 에 배움이 많지 않은 공원이나 차장 아가씨의 글이 당선되는 경우가 있 습니다. 그 글들이 좀 서툴고 어색하긴 해도 소설보다 더 감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독특한 체험을 가식 없이 진실하게 썼기 때문입니 다. 글의 힘은 진실에 있습니다. 한 선생님은 충분히 쓰실 수 있습니다.

203 짧게 잘라낸 머리를 안전 면도기로 밀어주며 운영 스님이 한숨 섞어 한 말이었다.

"갑시다"

운영이 감을 으석으석 씹의며 돌아섰다.

208 유일표는 그 모호한 웃음과 함께 그가 묻는 말의 뜻을 언뜻 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 알고나 떠드는지 보자,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들어볼 필요 가 있는 말이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233 약속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김 중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1분, 1분 이 조바심이 일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1초, 1초가 피가 마를 지경이 었다.

마침내 30분이 지났다.

혹시 이놈이!

온갖 생각을 다하던 한정임은 돌로 머리를 치는 것 같은 생각에 부딪 혔다.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현기증으로 머리를 감쌌다. 심한 어지 러움 속에서 수백 개의 돈다발들이 저 먼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248 기획실장이 결재철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단호한 표정에 귀를 맛까 하게 세운 그는 아까 박준서 앞에서 굽실거리던 때와는 달리 완전히 만 사람이었다. 공장장들 앞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동시에 박준서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한 느낌이었다.

255 「머리는 많이 길었네? 그냥 중 노릇 하고 말 것이지.」 이상재가 유일표의 머리를 흘끗 보며 던진 말이었다.

「심뽀 고약하네. 이게 많이 긴 것으로 보여? 다 늙은 나이에 꼭 제대 군인 꼴이지. 너 보기 싫어서 그냥 중 노릇 하려고 했는데 원효를 능가 하는 고승이 하나 더 나올까 봐 관뒀다.」

유일표는 정말 제대군인 같은 짧은 머리에 두어 번 손가락빗질을 하며 웃었다.

「잘했어. 괜히 고승열전 쓰기 힘드는데. 그런데....... 잔칫집 기분 나 게손님들이 많으신가 보네?」

257「야. 일어나서 밥값 해.」

유일표가 이상재에게 툭 말했고,

「하, 이 집 인심 한번 고약하네. 손님을 막 부려먹으려고 들고.」

이상재가 목청 높이며 일어났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쪽은 제가 들 거예요. 형님이 임신을 하셔서 못 들게 한 건데, 당신은 왜 그래요, 정말.」

서경혜가 당황스럽게 손을 저으며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좋은 기운 뒀다 어디다 써. 이런 때 형수님 위해야 귀염받지.」

「그래 요놈아, 계수 씨 사랑은 시아주버니다. 어서 나가기나 해라.」

258「어. 아주 잘생겼네. 미녀야.」

이용진이 아이를 올려다보며 덕담을 했고,

「예, 두 사람은 별론데 애가 아주 예쁘고 총명하게 생겼어요. 이 큰아버지가 애 좀 쓰게 생겼다. 현지 따라다니는 사내놈들 막아내려면.」

이상재의 말에 모두 와아 웃었다. 임채옥도 이상재를 쳐다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얘가 이렇게 덕담을 할 줄 모른다니까. 두 분이 워낙 빼어나니까 애도 역시 아주 예쁘고 총명하게 생겼군요 해야지.」

유일표가 이상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고,

「맞어요. 심히 유감스럽네요.」

서경혜의 말에 또 모두 와아 웃었다.

261「응, 낯가림도 할 줄 알아? 그래, 그래, 엄마한테 가. 허미경이 아이 를 넘겨주고는「어쩌면 저렇게 두 분 좋은 점만 쏙 빼서 닮았는지 모르 겠네요. 집안이 잘될 징조예요」 하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봐라, 덕담은 저렇게 하는 거야. 나이 들어가는데 어서 좀 배워라.」

이상재의 어깨를 툭 치며 유일표가 하는 말에 모두는 와아 웃었다.

「어서 많이들 드세요. 그럼 현지는 이만 물러 갑니다.

263 「그야 당연하지 뭘. 제 자식인데.」

유일민이 말을 받자,

「형수님, 전혀 부러워하지 마세요. 형님은 보육원 세 개는 차릴 정도 가될 테니까요.」

유일표의 말에 모두 웃었다.

264 「말은 안 하고 왜 그렇게 자꾸 술만 마시세요? 빈속일 텐데.」 허미경이 숟가락을 놓고 상에서 물러나 앉으며 이상재에게 말했다.

「몰라요? 본전 뺄려구요.」

이상재의 뚱한 대꾸에 모두 웃는데, 유일표는 무슨 색다른 뜻인지 이 상재의 등을 치며 유난히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276 안자경의 얼굴에 그녀의 아버지 안원장의 얼굴이 겹쳐졌다.

277 난 척 잘하고 낯내기 좋아하는 김선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279 아니야 김선오가 아니라 딴 사람에게 부탁했어

289「자네는 다 좋았는데 출신도가 안 좋아. 그게 옥에 티라면 티라구 어 쩌겠나, 다 잊어버리게.」

304 팽팽하게 맞섰어요. 그런데 김구는 미군정의 지지를 못 받는 입장이나 까 그 대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전국 순회강연을 나섰어요. 김 구는 가는 지방마다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 환영 이 아주 열렬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강연은 큰 도시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작은 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었어요. 그런 동태가 이승만에게 빠짐없이 보고된 것은 말할 것 도 없지요. 그런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놈들 같으니라구!'였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제시대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미국 본토에 있다가 나중에 우리 동포들이 많은 하와이로 옮겼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을 모아 독립투쟁을 할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어요. 이승만은 독립군보다는 외교 능력으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와이에 가자마자 박용만과 대립하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을 따라 동포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결 국에는 이승만 쪽에 몇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어요. 이승만은 박용만 쪽으로 쏠린 동포들에게 감정이 많았는데, 김구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전라도사람들이 옛날 하와이의 동포들처 럼 보인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전라도사람들을 하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07 「허, 정 부장 생각보다 순진하시네. 나. 이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 정 부장이 그리 말하니까 안 할 수가 없소. 어느 방송국에서 어떤 전라도 출신 작가의 작품을 단막극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방영 며칠 전에 중 정에서 나서서 전라도말은 안 되니까 모두 경상도말로 바꾸라고 했어 요. 그 작품 무대가 전라도라서 주인공들이 전부 전라도말을 쓰고 있었 거든요. 그러니 PD가 어떻게 됐겠어요. 부랴부랴 작가한테 전화를 걸어 서 양해를 구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작가가 한마디로 거부하며, 방영을 하지 말라고 해버렸어요. 그러자 PD만이 아니라 편성국 전체가 난감해 지고 말았어요. 다음 작품은 안 돼 있지, 90분짜리를 다른 것으로 바꿔 칠 것도 없지. 그런데 그 극은 예정대로 방영이 됐어요. 전부 경상도말 로 바뀌어.」

「아니, 그게 정말이에요?」

309 이튿날 아침 대합실에서 이상재를 만난 유일표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선배님께서 웬일이십니까?」

「가봅시다. 그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잖소.」

원병균이 유일표의 팔을 잡았다.

기차는 한강 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은 영겁의 세월을 담고 긴긴 흐름을 짓고 있었다. 

 

 

by hgp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