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주요 등산코스 - 북한산성코스, 비봉코스, 대남문코스, 오봉코스, 신선대코스 등 - 는 거의 탐방했으나, 숨은벽 코스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 했다. 지난 9월경 도전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밤골코스로 간 적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등산코스였기 때문에 발생한 작은 실수였다. 밤골코스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스였기 때문에 기꺼이 등산을 즐겼다. 그 사이 도봉산을 동창들과 두차례 다녀왔지만, 날이 추워지기 전에 숨은벽코스를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커졌다. 인터넷 탐색을 통해 다시 한번 코스를 점검하고 드디어 도전하기로 한다. 연신내까지 전철로 이동하여 3번 혹은 4번 출구로 나와 34번 또는 704번 버스를 타고 사가막골에서 하차한다. 버스는 평일이기 때문에 등산객 보다는 서울외곽에 사는 일반승객이 더 많다.
<숨은벽 코스 초입, 호박돌로 정비되어 있다.>
사가막골. 처음 와 본 곳이기 때문에 잠시 당황된다. 이럴 경우, 아무 길이든 북한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둘레길이 나오고, 둘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온다. 그리고 쉽게 목적하는 등산코스로 접근 할 수 있다. 방향을 잃었을때 적용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경험으로 얻은 나름의 노하우다. 길을 찾는 이 노하우는 자기과신이 지나쳐 약 2시간 후 큰 낭패를 보게 된다. 환경이 주는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되어 벌어진 아찔한 경험이다.
<쉼터>
<소나무 길>
최근 2~3일 동안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오늘은 산행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아침에 하늘을 보니 평소와 같은 맑은 하늘이고, 일기예보를 급히 찾아보니 미세먼지가 사라졌다는 예보를 듣고 집을 나섰다. 정상까지 마주친 사람은 두사람뿐이다. 주말 북한산은 시내거리를 걷는 것처럼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오늘은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한가롭다. 오늘 같이 사람이 없는 날은 산에서 사람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대개 평일 날 마주치는 솔로 등산객들은 산을 사랑하는 마니아라고 보면 된다. 처음 마주친 사람은 50대 중반쯤되는 아저씨이다. 그가 저 멀리에서 걸어 올 때 나에게 인사를 건넬것으로 직감했다. 예상이 맞았다.
<숨은벽 가는길에서 바라본 노고산>
초입길은 평범하다. 등산로 정비사업을 했는지 호박돌로 계단을 놓았다. 좀 쉽게 올라간다. 숨은벽은 어디에 있는지 초입길에서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북한산 건너편으로 노고산이 보인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노고산으로 등산 갔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5산(불암산,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과 관악산, 청계산 등에 비하여 변방에 속하는, 애매하게 떨어진 경기도 산이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는 산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도 어느 누군가는 그 산을 등산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다양하니까. 어릴적 추석이 되면 중학교 운동장에서 면민체육대회를 하곤 하였는데 거의 모든 면민들은 거기에 참석한다. 그런데 중학교에서 한참 떨어진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서너명의 아이들이 흙놀이를 하는 것이다. 북적이는 잔치를 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같이 어울리지 않고 왜 따로 놀고 있을까. 내가 볼때는 무척 외로워 보였는데, 그들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비슷한 경우로,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 학교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조기축구회 사람들.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한데 대표팀 경기는 보지 않고, 따로 축구를 하고 있다니.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경우는 꽤 흔하다. 남들 하는거 구경하는 것 보다,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흥미가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비주류는 이렇게 시작되는것인가.
<멀리 보이는 인수봉, 숨은벽 능선, 백운대>
<소나무 숲. 소나무는 사계절 한결같이 푸르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 한결 같음 >
<인수봉 후면>
<숨은벽능선 쪽에서 바라본 상장능선>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로 상장능선이 보인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상장능선은 출입통제구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통제구역을 뚫고 가는 사람도 있다.
<직진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표지>
평범한 길을 걸어가는데 첫 번째 갈림길이 나왔다. 우회라는 푯말이 걸려있어 그냥 돌아갔다. 숨은벽 능선은 굉장히 험한 바위능선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곳이 숨은벽 능선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골바위- 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주요 코스를 빼먹고 돌아간 것이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주위에 앞서가는 등산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산행하는 것도 괜찮다.
<좀 더 확연히 드러난 인수봉, 숨은벽 능선, 백운대>
<우회하는데 길이 없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
<다시 찾은 능선길>
<능선 등산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숨은벽 능선>
<백운대방향으로 줌인, 태극기가 보이는가?>
<도봉산 방향, 오봉을 줌인>
<거대한 바위, 바위 이름이 있을거 같은데?>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 이 바위 위로 걸어간다.>
<가까이 가서 찍은 천길 낭떠러지, 살 떨려>
<뒤돌아서 한컷, 지금까지 걸어온 길>
아쉽기는 하지만 해골바위–전망대 코스는 다음에 가보기로 한다. 안내대로 우회하였지만 길은 바르게 나와 있지 않다. 다시 능선쪽을 향하여 올라간다. 어렵지 않게 능선에 도착하니 바위능선이다.
<본색을 드러낸 숨은벽 능선. 왼쪽 계곡에서 고생한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능선에 올라 산세를 보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숨은벽은 바로 정면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지나온 우회로가 숨은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숨은벽 능선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른쪽 밑은 천길 낭떠러지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한다면.
"헉!"
해발고도는 인수봉보다 낮지만 스케일은 더 웅장하다. 인수봉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둥그스러워 포근한 느낌이지만, 숨은벽은 건장한 남자가 숨겨놓은 어깨근육을 드러낸것처럼 힘이 뻐쳐나오면서 요란하다. 능선 대부분이 바위길로 되어 있는 능선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숨이 막히며 아찔한 감동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계곡 건너편 백운대쪽은 한폭의 산수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란 말”은 사실이었다. 동창회 사이트에서 본 중국의 황산보다 훨씬 경이롭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가 있는데 굳이 중국(외국)까지 갈 필요는 없다. 숨은벽 초입까지 바위능선을 타고 재빠르게 이동한다. 이 정도 바위능선은 쉽게 돌파한다. 드디어 숨은벽. 등반장비 착용자만 등반이 가능하다는 안내판이 있다. 능선의 스케일이 어렵다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곧바로 우회하는 길을 찾아본다. 왼쪽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감시초소가 있다면 길이 있을 것이다. 그쪽으로 내려가본다.
<끈질긴 생명력의 소나무. 바위틈에서 어떻게 영양분을 섭취하지?>
<숨은벽 입구의 우회로. 이곳으로 가야 했는데, 잔머리 굴리다 큰 낭패를 보았다.>
<전체 탐방로와 검은숲 계곡 확대>
자세히 살펴보는데 길이 없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보니 오른쪽으로 말뚝을 박아놓은 길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백운대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고 내려가는 방향이다. 이 길도 아니라고 순간 착각했다. 나중에 복기해 보니 유일한 우회로 인데 내려가는 방향만 보고 잘못 판단한 것이다. 순간의 판단 실수로 나중에 주위에 아무도 없는 숨은벽 계곡에서 약 2시간 동안, 생사까지 생각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을 만난다.
<거대한 바위능선>
<인수봉 북측면, 가운데 검은숲은 고생한 계곡. 검은숲은 내가 작명.>
<검은숲 계곡. 벌써, 바위에 얼음이 얼었다.>
다시 산불감시 초소로 이동하여 우회등산로를 찾아보니 접근금지 표지만 있다. 살펴보니 인수봉쪽 계곡으로 올라가면 백운대로 가는 길과 만날 것 같았다. 접근금지 라인을 넘어 인수봉 사이 계곡으로 진출한다. 결과적으로 또 오판을 한 것이다.그런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70도는 되는 것 같다. 또 보기와는 다르게 바닥은 흙이 아니고 제법 큰 바위가 대부분이다. 북향이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훨씬 추워 12월 초순이지만 바위표면에 얼음이 얼어 미끄럽고, 벌써 눈이 곳곳에 쌓여 있다. 그래서 발에 체중을 의지하기 보다는 나무를 손으로 잡아 팔의 힘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하지만 나무가 작고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몸무게와 힘을 제대로 받아 줄지 의문이다. 나무가 꺽이거나 뽑히기라도 한다면? 고립무원 산속에서 어떻게 될까?
<검은 숲 계곡. 잔설과 바위, 미끄러워 발을 뒤딜수 없을 정도다>
아직 오후 3시쯤이지만 벌써 해는 보이지 않고 두려움이 밀려온다. 30여분간의 사투 끝에 가까스로 계곡까지 접근하였다. 이제 계곡을 따라 가면 쉽게 안전지대까지 갈 수 있다. 한데 안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곡을 큰 바위가 가로 막고 있지 않은가.
"아~ 절망이다."
올라갈 수도 내력갈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바위를 넘을 수 없어 다시 바위를 피해 돌아위쪽 능선으로 방향을 잡고 서서히 올라간다.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긴장 때문인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다시 작은 나무를 의지하여 돌아간다. 처음에 계획했던 계곡과는 한참 떨어진 곳으로 방향이 진행된다.
"어~ 이게 아닌데.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빠른데."
"이 방향으로 어느 세월에, 어떻게 올라 가나?"
대낮이지만 이곳은 초저녁같은 어둠이 내려온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바위는 미끄러워 함부로 디딜 수도 없다. 몹시 고민되었다. "119를 부를까"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기온은 점점내려간다. 만약 4시까지 이곳을 탈출하지 못한다면 119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더 늦게 119를 부르면 그들도 나를 찾는데 힘이 들기 때문에 4시까지만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로 하고, 그때까지 이 계곡을 탈출하지 못하면 119를 부르기로 결정한다. 구출되면 접근 금지구역에 들어 갔다고 벌금을 물리지 않을까?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마당에 벌금생각부터 나니 아직은 여유가 있는것 같지만, 솔직히 지금 이순간이 너무 두렵고 힘들다. 그런데 이 곳이 핸드폰이 터지기는 하는 것일까. 능선이나 정상에서는 핸드폰이 잘 되지만 산속 계곡에서는 가끔 안되는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북한산 계곡중에서도 다른 계곡보다 깊은 계곡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는다. 만약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 된다면 두려움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지형지물을 살펴본다. 어렵기는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작은나무 밑둥을 잡고 서서히 발을 옮긴다. 가끔 발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것은 괜찮지만 주로 힘을 의지하는 나무가 꺽이거나 부러지면 난 저 밑으로 최소한 20~30m 밑으로 추락한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따뜻하 방안에 있지 않고,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자문해 보지만 내가 선택한 길인데 어쩌겠는가. 일단 저 너머 코너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서서히,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몸은 땀으로 흥건하다. 클라이밍이 이런 기분일까. 1m 전진하는 것이 몹시 조심스럽고 시간도 더디다. 한걸음 한걸음씩 이동하여 코너까지 가는데 눈 위로 등산화 발자국이 보인다. 다른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이다. 순간, 지금까지 두려움이 조금 사라지고 안심이 된다.
<계곡에서 탈출. 인수봉 사이길>
곧 탈출구가 보일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목적했던 코너까지 도착한 순간, 지금까지 지난 온 것보다 경사가 훨씬 완만하고 큰 바위가 아닌 작은 돌들이 계곡까지 이어져 있었다. 눈이 의심될 정도로 주변환경이 바뀐것이다. 살았구나! 119부르지 않아도 된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 신을 믿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감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살았다는 기분에 비호 같은 몸놀림으로 계곡을 거쳐 인수봉 옆 능선에 이르렀다. 서울시내의 아파트 단지가 한가롭게 보인다. 지나온 곡을 뒤돌아 보니 역시 그곳으로 접근을 금지하는 라인이 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접근금지구역에서 헤맨것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도 험한 길이니 접근금지 안내문을 붙여 놓은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계곡에서 빠져나오긴 했으나 나의 상황 판단이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여 위기에 빠트렸던 것이다. 시스템적인 판단, 주식시장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가. 판단의 오류의 위험성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경험이었다. 국가, 기업, 가정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판단의 방향성 아닐까. 새삼 깨닫게 된다.
< 북한산 너머 한가로운 서울의 아파트>
<백운대 가는 길>
<백운산장쪽에서 바라본 인수봉. 늘 경외심과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체력이 너무 고갈되어 백운대는 올라가지 않고 인수봉을 왼쪽으로 끼고 도선사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언제 보아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인수봉. 백제의 시조 온조가 올라가서 새나라를 세우는 것을 구상했다고한다. 옛날에 장비도 없이 어떻게 올라갔을까? 전설인지 옛 문헌에 있었는지 알길이 없다. 우리는 삼국사기를 대단한 역사책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 숭배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쓴 다음, 참고로 했던 옛 기록을 전부 없애버렸다는 말이 있다(함석헌 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 5천년 역사에서 사료라고는 중국문헌에 한 줄 언급된 것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 현실이 안타깝다. 역사다운 기록이 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가 처음이라는 것은 부끄러울뿐이다. 백운산장을 거쳐 내려오면서 아침에 사온 김밥을 4시가 넘어 먹는다. 무척 배가 고픈데도 맛이 없다. 숨은벽과 인수봉사이 계곡에서 탈출하려고 너무 고생한 탓이다. 숨은벽 코스 산행. 지나가는 등산객도 없고,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계곡에서 생사 걱정까지 했던 외로운 산행이었다. 한가지 소득 아닌 소득은 팩트에 의한 객관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산행이었다. 조만간 정상적인 코스을 밟아 숨은벽능선을 가 보리라.
<백운산장에서 바라본 족두리 바위>
<도선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붙임바위. 이 바위에 돌을 붙이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by hgp, 201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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