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모임 후기(ver1.4)
# 두려운 외출
지금 시각 6시 45분.
5분 남았다
남자애들은 가끔씩 봐서 알아 보겠지만, 여자애들은 과연 나를 알아볼 수 나 있을까
요즘 들어 부쩍 살이 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온 터라 두려움이 앞선다
드디어 사당역 5번 출구
용기를 내어 계단을 올라간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횡한 하늘이 보이는 겨울산행보다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맑은 하늘과 햇살이 들어오는 가을산행이 기분이 상쾌하다
그래서 인지 낙엽이 지기 전 단풍으로 물든 가을을 만끽하려는 등산객들로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전철역은 분주하다
아무도 안 보인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본다
전혀 없다
시간을 확인해 본다. 분명 맞는 시간인데
혹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단체로 간다면 봉고차 정도는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 마져 없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왔는데 억울하다.
열받아 바로 돌아가려고 했다.
헌데 기아 타이거즈가 십이년만에 우승해서 오늘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다.(타이거즈에 감사한다)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남태령쪽으로 십여미터 가다보니 삼삼오오 모여있는 인간들이 왠지 낯설지 않는다.
음…….
어라! 한 놈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절골놈이네
C8 스키들(절대 욕이 아님)! 출구쪽에서 좀 기다리지
아무튼 다행이다
“어! 오랜만이다”
“야! 몇 년만이냐?”
“응, 잘 살았냐”
“ “
반가운 인사가 오고 간다
그런데, A양, B양은 전혀 낯설다
전라도 화원땅에 이런 미인들이 있었다니
필름을 재빨리 과거로 돌려보지만 화면이 안 떠오른다. 어떻하지
그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호구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서서히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버스에 올라 자리 잡고 잠이나 자야겠다
연일 체육행사와 야유회로 무리했더니 피곤하다
# 선운사에서
내장사에 버스를 주차시킬 장소가 없단다. 아직 단풍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주말이라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밀려드나 보다.
하여, 코스를 변경하여 선운사로 향한다. 그곳에서 시골 동기들과 조인하여 도솔암까지 등반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잠시후
C의 일장연설이 시작된다
“채소는 누구, 농약은 누구네집을 이용하라고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님께 꼭 전해라. . . . . . . . 어쩌고, 저쩌고 . . . 이러쿵, 저러쿵. . . .”
육중한 몸매에서 품어 나오는 목소리의 카리스마는 아직도 여전하다
어쨌거나
노래방을 갔는데
노래 한곡 하라고 해서 얼른 생각나는 노래가 없어 “돌아와요 부산항”을 아까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눈치빠른 D가 그만 우선예약 버튼을 눌러버린다
농담으로 곡목을 얘기 했다고 하였지만, 떠밀려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음주가무에 자신이 없는 내가 노래하는데
이런 내마음(족 팔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동영상과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대는 E가 얄밉기만 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F는 내가 온다는 소식듣고 시골에서 일부러 왔단다
안습(혹시 뜻을 모르면 인터넷 검색해 보시길)이다
이 사람의 존재를 느끼는 동기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구나
# 올라오는 길
버스 뒷좌석에서 G의 넋두리가 시작된다 약간 취했나 보다
사연인즉
잠자는데 방해되니까 노래 좀 그만하라고 누가 애기 했단다.
그런데 G는 잠을 자려면 집에서나 자지 잠자려고 여기 왔냐고 투정이다
기분이 단단히 상했다
다시는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는지 H와 I,J가 달래고 있다
나는 그냥 자는 척한다.
왜?
어딜가나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친구은 늘 있기 마련이다.
또, 너무 조용히 넘어가면 재미없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자하니 말은 조리있게 잘한다
학교 다닐때는 힘만 좋았는데, 말발이 엄청 쎄졌다.
늦은 시간 도착한 사당역
멀리 사는 한 친구가 차편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우리집에 들러서 내 차로 데려다 줄려고도 생각했는데
일단 피곤해서 누군가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지켜만 봤다
다행히 해결이 된거 같다
그를 위해 봉사해준 K에게 미안하다
# 10년후 어느 가을날
와이프가 흥얼거리며 소파에 누워 오이 마사지를 하고 있다.
나 : 뭐 좋은일 있어?
와이 : 응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어
나 : 초등학교? 근데 웬 마사지?
와이 : 이왕이면 이쁘게 보여야 할 거 아냐,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나 : 첫사랑도 나오겠네?
와이 : 뭐!!! 난 당신이 첫사랑이라구
나 : 정~말. 그런데 얼굴이 왜 빨게져?
와이 : 이게 빨게지는거냐.
나 : 어디서 해
와이 : 내장산, 이번주 일요일. 멀리 가니까 그날 나 찾을 생각하지마
나 : 알았어. 잘 갔다와. 아마 선운사로 차 돌릴걸
와이 : 왜?
나 : 가 보면 알거야.........
창밖을 보니 붉게 물든 단풍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파랗다.
문득 그때 그날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P S: 시간나면 위에서 언급한 A,B,C,D,E,F,G,H,I,J,K 가 누군지 알아맞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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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gp 200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