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을 독차지 하려고…(2011.10.15 토요일)
그만 하산 하는게 좋지 않을까. 후두둑, 후두둑. 비 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집에 전화하여 일기예보를 알아보라고 했다. 예보 결과가 비 올 확률이 80%라며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한다. 이제 겨우 20분 정도 올라왔는데, 연주대까지는 아직도 2시간을 가야 한다. 집을 출발할 때 비가 한두방울 떨어 지기는 했다. 하지만 몇 일전 일기예보는 금요일날 비가 그친다고 예보되었다. 하여 토요일은 흐리기만하고 비는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기후가 급변한 모양이다. 천둥 번개 소리도 들리고 비는 쉽게 그치질 않는다.
잠시 등반을 중지하기로 한다. 서둘러 하산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나도 그만 내려갈까? 가을비는 기온이 내려가는 전조다. 더군다나 산에서 이 비를 맞는다면 감기 걸리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가까운 전철역이 사당역인지, 낙성대역인지 물어 오는 등산객도 있다. 산의 중턱도 아니고 겨우 3부 능선 정도이지만 오늘은 그만 하산하는 것이 낫겠다. 다른 등산객들도 서둘러 내려오고 있다. 그렇게 하산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순간,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 저 사람들이 모두 내려온다면 “관악산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산을 내가 혼자 독차지 할 수 있다”. 다시 산을 올라가기로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감기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한 몸살을 앓을 수도 있고, 비 때문에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관악산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어 다시 올라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자켓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분이 지나가는 나를 보면서, “모두들 내려가는데 저 사람은 왜 올라갈까”라고 옆 동료에게 묻는다.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도 모여 사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주식시장에서 동일한 주식이지만 상승을 예상한 매수자가 있는 반면, 하락을 예상한 매도자도 있다. 이렇게 시장은 형성된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와 같다고 본다.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까. 좌파, 우파도 그런 사고의 차이가 아닐까.
비는 점점 더 거세진다. 다행히 등산복의 방수성능이 제법 우수하다. 빗 소리는 요란하지만 속옷은 젖지 않고 있다. 한참을 쉬지 않고 올라간다. 중간 봉우리가 보인다. 어, 태극기, 지난번 지리산 가기 전에 친구들과 갔던 국기봉이구나. 한참 올랐는데 겨우 국기봉이라니. 하지만 잠시 머물어 서울의 풍경을 훝어 본다. 차들은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작은 건물들 사이의 높다란 빌딩은 서로 키재기를 하는 동안, 한강은 말 없이 흘러간다. 물안개속 서울은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방향을 바꿔 연주대 쪽을 바라본다. 그런대 연주대 안테나가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돌려 살펴보니까 겨우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엉뚱한 방향이다. 이럴 때 지리산과 같은 깊은 산속에서는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도 있을 것이다. 정상은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올라가야 한다. 지금부터 쉬운 코스는 아니다. 이제 하산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내려 왔기 때문이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출발. 오를수록 바위 능선이 많이 나온다. 비가 오기 때문에 미끄럽다. 오늘은 힘을 더 써야 하고 정신은 더욱 집중해야 오를 수 있다. 오직 등반에 집중해서 그런지 한시가 넘었는데도 배고픈 줄도 모른다. 번개가 또 친다. 번개 치는 날 바위가 위험하다는데….. 설마 나에게….. 빨리 바위구간은 벗어나야지. 이제 정상은 얼마 남지 않았다.
연주대까지 거리 600m 시간 20분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지금까지 주위에 사람이 없었는데 위를 보니 세 사람이 올라 가고 있다. 이런, 나 혼자 관악산을 독차지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세 사람 정도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어 외로웠는데 오히려 반갑기까지 한다. 그들은 비가 올 줄 알고 준비를 철저히 한 차림새다. 등산용 우의를 입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속도는 좀 느리다. 난 그들을 금방 따라 잡았다. 하지만 좁은 바위 구간과 낭떠러지 구간이 있어서 추월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지니 비가 우박으로 바뀌었다. 소금 같은 우박이 떨어진다. 이 우박은 관악산이 나에게만 주는 선물이다. 포기하지 않고 오른 보람이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위 사이의 단풍나무는 빨갛게 물들어 있다. 비와 우박과 빨간 단풍나무, 그리고 그 뒤로 푸른 능선과 골자기. 너무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다. 이제 관악문 바위틈를 통과하여 연주대다. 드디어 정상. 몇 몇 등산마니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오늘 관악산은 나의 것이다. 잠시 모자를 벗고 비를 맞아 본다. 세찬 바람이 온 몸을 휘감긴다. 비와 바람이 달다.
잠시후
어느 매니아는 비를 맞으며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세상 어느 만찬보다 더 맛있을 것이다. 이 순간 그에게 경외감이 느껴진다..
Epilogue
집에 도착하여 등산배낭을 열어보니 배낭에 빗물이 한 컵쯤 고여 있다. 등산화는 장화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다. 자켓이 제법 비를 막아 준 덕분이다.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핸드폰카메라을 꺼낼 수도 없었다. 비가 많이 와서
by hgp, 2011. 10. 17